풍경화를 주요 장르로, 영국 낭만주의
영국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 윌리엄 터너와 존 컨스터블은 풍경화를 미술의 주요 장르 중 하나로 만드는데 일조한 인물입니다. 이들은 관습대로 풍경화를 그리던 이전 화가들과 달리, 자연을 깊이 관찰한 뒤에야 그림을 그렸습니다. 덕분에 두 사람 모두 근대 풍경화의 선구자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었는데요. 세부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각각 차이점과 특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정과 사실성의 강조, 프랑스 낭만주의
1816년 7월 2일, 세네갈로 향하던 배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메두사호. 프리깃 전함을 개조한 배로 세네갈의 생루이 항구를 차지하기 위해 항해하는 중이었죠. 당시 프랑스는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해 부르봉 왕조가 복위한 상황이었는데요. 왕당파 출신의 퇴역 장성이자 메두사호의 선장 위그 뒤 쇼마리는 25년간 배를 탄 적도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자격 미달의 인물이
무력하고 고독한 인간, 독일 낭만주의
독일 낭만주의는 다른 나라에 비해 이른 시기에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주로 문학과 철학 분야에 한정되어 있었는데요. 이는 당시 독일 미술계가 이론적 토론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불어 아빌고르 등 당대 화가들은 원천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데생에만 천착, 회화를 포기함으로써 일반 대중과 더욱 괴리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죠. 그럼에도 독일 낭만주의 미술에
감수성과 이상의 추구, 낭만주의
낭만주의(romanticism)이라는 용어는 중세 문학의 장르 중 하나인 기사도 소설을 가리키는 로망스(romance)에서 유래했습니다. 원래 이 단어는 ‘중세적인’ 혹은 ‘공상적인’과 같은 의미로 쓰였는데요. 18세기 초부터 그 의미가 확장되어 감성적이며 신비로운 상상을 추구하는 문학과 예술 장르를 일컫는 말로 통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대표자, 다비드와 앵그르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대표주자인 자크 루이 다비드는 폼페이 유적 발굴이 시작된 1748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20대 시절인 1776년 로마 상 장학금을 받아 이탈리아로 유학을 다녀왔는데요. 그곳에서 수많은 고전 미술과 당시 유행하던 그리스 복고주의 미술품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이를 두고 “마치 백내장 수술을 받은 것 같았다”고 회상합니다. 흐릿하게 보이던 눈이 마치 맑게
그리스 로마 문화의 재조명, 신고전주의
1592년 이탈리아, 운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오래된 건물과 회화 작품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인해 용암과 화산재에 파묻혀 있던 그리스 로마의 도시, 폼페이가 발견된 순간이었죠. 우연한 계기로 폼페이의 소재가 밝혀졌지만 당시는 본격적인 발굴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생생하게 보존된 고대 도시를 눈 앞에 두고 나중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죠. 잠시 잊혀졌던
화려한 장식, 로코코 미술
로코코(Rococo)란 말은 원래 더위를 피하기 위한 석굴이나 분수를 장식하는 데에 쓰이는 자갈 또는 조개 장식 등을 일컫는 ‘로카이유(rocaille)’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루이 15세가 통치한 시기인 1715년부터 1774년까지 파리에서 크게 유행했는데요. 미술사가들은 이것이 17세기 프랑스의 엄격한 바로크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 나타났다고 추측합니다. 이후 프랑스 국경을 넘어간 로코코 미술은
바로크 고전주의의 완성, 프랑스
프랑스의 바로크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선 당시의 통치자 중 한 명인 루이 14세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짐은 곧 국가다’라는 말로 유명한 그는 국가의 권위를 옹호하는 동시에 통치자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했는데요. 자신의 군주권과 왕국의 영광을 과시하기 위해 예술에도 후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는 문화와 예술을 자신의 틀에 맞춰 관리하고자 ‘아카데미(
천재 궁정화가의 나라, 스페인
바로크 시대에는 유명한 궁정화가가 많습니다. 큰 규모의 국가가 생겨나면서 예술가들 역시 이러한 나라의 군주를 상대해야 했기 때문인데요. 우리가 앞서 살펴본 반 다이크 역시 영국 찰스 1세 시절 궁정화가로 활동하기도 했죠. 하지만 궁정화가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이 사람, 디에고 벨라스케스를 선택해야 할 겁니다. 그는 10대에 이미 완벽한 기교를
미술 ‘시장’의 개막, 네덜란드
네덜란드의 바로크 예술은 1610년부터 1670년 사이에 절정을 이뤘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인접국인 플랑드르와 다르게 신교가 지배적인 국가였는데요. 이로 인해 가톨릭 지역의 예술가들처럼 교회의 주문을 받을 수 없어 새로운 미술 장르가 개발될 필요가 생겨났습니다. 더불어 당시 네덜란드에선 시민계급이 주도하는 새로운 정치 체제가 완성되었는데요. 그 결과로 왕실이나 귀족 계급 같은 기존의 주요 후원자들은